초록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조선 말기 사상가로서 전통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서구의 사상까지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동서 통섭의 선구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혜강은 감각을 배제한 채 마음의 원리만을 궁구하는 전통 학문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모든 탐구는 감각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혜강의 학문방법론은 대개 경험주의라는 이름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혜강의 철학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기(氣)와 신기(神氣)인데, 기와 신기는 감각적으로 어떻게 지각하며, 기와 신기는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혜강은 기가 형질 내부와 외부의 두 가지 기로 나뉘는데, 내부의 기는 바로 ‘운화의 기’이며, 이것은 살아있는 기로서 해부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육체적 지각 능력인 감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지각의 원천이 되는 신기의 능력으로 그것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묘(妙)’라는 도가적 표현을 차용하고, ‘신(神)’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기는 형질보다 시간적으로 앞뒤, 그리고 공간적으로 주변으로 형성되며, 감각은 기의 이러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는 기보다도 더 멀리 펼쳐지며 더 은밀한 것이다. 신기를 보지 못하는 자를 혜강은 ‘신기의 귀머거리[神氣聾]’라고 조롱하였으며, 형질과 기의 작용이 끝난 다음에 고요히 드러나는 신기의 소리를 듣는 것을 ‘잠청(潛聽)’이라 하였다. 기와 신기의 차이는, 기는 단지 힘일 따름이지만, 신기는 지각 능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신기는 지각된 경험을 기억하는 능력도 있다. 기억의 축적은 지혜를 성장시키지만, 과거가 현재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혜강은 신기의 경험 축적도 중요하지만 본바탕의 순수함 또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신기의 순수함은 통하지 않으면서도 통하지 않는 바가 없는 무한의 세계를 함축한다. 이것은 도가나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의 깨달음으로 세상 일을 만사형통한다는 초월적 수행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측면은 혜강의 사상이 단지 감각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험주의 이상의 초월적 세계를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혜강이 불교나 도가를 일면 배척하였지만, 그 초월적 수행론의 측면에서는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다. 이점은 향후 더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키워드

최한기, 기, 신기, 감각, 지각.

참고문헌(9)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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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단행본] 知訥 / 2002 / 修心訣, In 韓國佛敎全書 4권 / 동국대학교출판부

  5. [단행본] 崔漢綺 / 2002 / 增補 明南樓叢書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6. [단행본] 崔漢綺 / 1989 / 국역 기측체의 / 한국민족문화추진회

  7. [학술지] 박종홍 / 1965 / 최한기의 경험주의 / 아세아연구 8 (4)

  8. [학위논문] 吳海圭 / 1996 / 최한기 인식론의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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