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계(limit)에 관한 사색은 철학의 중심 문제 중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나 서양 중세의 신과 절대자, 동양의 하늘(天)에 관한 사색은 모두 한계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인간은 한계 너머에 대해 사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트겐쉬타인에 따르면 한계 너머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려는 것이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였으며 이 때문에 철학자나 종교가들은 심각한 질병의 상태에 빠져 왔다. 소크라테스나 데리다는 비트겐쉬타인과 마찬가지로 한계 너머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적 지혜가 신적 지혜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니며 보잘 것 없다고 말함으로써 한계 너머를 사색하려는 인간의 월권적 태도를 비판한다. 데리다도 텍스트 밖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한계 너머에 무언가를 설정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자들의 시도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인간들은 자족적인 삶, 곧 세상에서의 삶이 자기충족적이기를 바라지만 인간 삶의 문제는 한계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간들은 한계 너머의 영역이 인간 삶의 영역에 종속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영역이 인간 삶을 지지하는 근거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한계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이몬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살 것을 요구한다. 곧 다이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간 삶이 결코 자족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할 것을 요구한다. 데리다는, 세상의 모든 체계가 절대타자와의 얽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사례를 통해 보이고자 한다. 곧 세상의 모든 체계는 절대 타자와의 얽힘이 있어야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절대 타자와의 얽힘의 흔적으로 구성되어진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족적일 수 없게 된다. 소크라테스나 데리다는 모두 이 세상의 삶이 한계 너머와의 얽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를 내세우고 사는 삶이 근원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보이고자 한다. 인간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자기반성을 함으로써 인간의 문제점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성이나 자기반성은 한계 문제를 사색하는 데 불충분하다. 소크라테스와 데리다는 모두 자기반성을 통해서 자기를 해체하는 작업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아니라 다이몬 때문에 자신도 아포리아(무지를 자각한 상태)에 빠져 어렵게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곧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자신이나 타인을 논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다만 자신의 한계 너머에 있는 다이몬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논박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데리다도 이와 마찬가지로 해체적 반성은 어떤 경우에도 기생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이미 자기가 성립되는 과정에 한계너머의 절대타자와의 얽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곧 이성이 자기를 반성적으로 비판하는 작업은 가능하지 않으며 절대타자와의 얽힘 때문에 어쩔 수없이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2500여 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한계에 관한 사색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자각 테제와 데리다의 해체적 반성 전략에서 확인할 수 있다.

키워드

한계, 소크라테스, 데리다, 무지의 자각, 해체적 반성, 절대 타자, 다이몬, 자기반성의 역설, 이성의 한계

참고문헌(14)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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