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일본의 근대정치사상사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19세기 메이지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실학의 특징을 ‘도리에서 물리로의 전회’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곧 19세기의 일본 문명의 격변을 ‘도리’(윤리)를 중심에 둔 전통적 주자학 문명으로부터 ‘물리’ 즉 자연과학을 중심에 둔 근대 과학문명으로의 전회로 파악한 것이었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일찍이 ‘리’의 통합적 이해라는 바탕 위에서 ‘심리’와 ‘물리’를 혼동했던 주자학이 원리적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이해를 벗어날 수 없었다면, 후쿠자와는 ‘물리’를 ‘심리’의 속박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비로소 자연에 대한 객관적 탐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후쿠자와 실학을 통해 구체화된 이 같은 마루야마의 근대사상 인식은 19세기 일본의 계몽주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그것은 왜 일본만이 동아시아 인국의 조선, 중국과는 다른 근대화를 거쳤는가를 사상적 측면에서 해명하는 것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메이지의 계몽사상은 반드시 마루야마식의 단선적 과정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쿠자와를 비롯한 일본 계몽사상가들의 주자학적 ‘리’의 재해석은 마루야마가 지적했듯이 ‘물리’를 ‘윤리’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윤리’의 속박에서 벗어난 ‘물리’가 이번에는 ‘윤리’를 지배하는 예기치 않은 반동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 다루는 스기우라 주고의 사상은 그 같은 ‘리’의 재해석의 과정 속에서 ‘물리’가 어떻게 ‘윤리’를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즉, ‘이학종’(理學宗)으로 대표되는 스기우라의 사상은 서양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한편, 인간 윤리 또한 물리 법칙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물리(자연과학)의 법칙을 인사에 적용하여 그것을 서양의 기독교와 비견할 만한 일본의 도덕주의로 재정립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자학적 ‘리’의 재해석을 통해 ‘윤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물리’가 반대로 ‘윤리’를 속박하는 순간, 그것은 메이지의 ‘과학주의’(scientism)라는 괴물의 등장을 의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울러 그것은 20세기 들어 본격화된 과학과 제국주의의 결합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키워드

스기우라 주고, 이학종, 과학제국주의, 마루야마 마사오, 후쿠자와 유키치

참고문헌(27)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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