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주제분류

정기구독(개인)

소속 기관이 없으신 경우, 개인 정기구독을 하시면 저렴하게
논문을 무제한 열람 이용할 수 있어요.

회원혜택

로그인 회원이 가져갈 수 있는 혜택들을 확인하고 이용하세요.

아카루트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영문교정

영문 논문 작성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영문 교정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어요.

고객센터 제휴문의

...

저널정보

저자정보

표지
이용수
내서재
0
내서재에 추가
되었습니다.
내서재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내서재에 추가
되었습니다.
내서재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초록·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조선시대 후기 한국주자학의 특징을 세 가지 점에서 논한 것이다. 첫째는 주자학의 禮學化 경향인데, 이는 조선 후기의 주자학이 이미 세속적인 왕권까지도 능가하는 형이상학적 권위화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사상이 경직화되어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내는 사상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둘째는 17세기 후반부터 ‘脫-성리학적’이고 ‘百科全書的’인 시각으로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는 실학적 사조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실학 사조는 전통적인 사상체계를 해체하고, 그 중심 의의를 무너뜨리며, ‘비주류’의 공간을 개척하는 등 몇 가지 근대지향성을 지닌다. 셋째는 주자학이 양반계층과 결합되어 일종의 생활문화로 정착하면서 조선왕조의 봉건체제를 뒷받침하는 버팀목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한국을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중에서도 가장 유교적인 문화특징을 지닌 국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Zhuism in the late Choseon Dynasty showed its features most notably in three aspects. First, the tendency towards ritualization. This indicates that Zhuism at that time had already exceeded secular kingship and developed into metaphysical authority above and over all the society. On the other hand, it also proved that Zhuism had started to become ossified, with social progress becoming increasingly difficult to promote. Second, the increasing trend in practical thought starting from the second half of the 18th century, which sought comprehensive reform of the social system with an anti-neo-Confucious and encyclopedic erudition attitude. This practical thought had a modern directivity because it kept the organizing traditional system, subverting central meaning, and exploring the marginal space. Third, Zhuism combined with Liangban and further transformed into a life culture, which made Zhuism and Liangban society become two pillars stably supporting the feudal dynasty system. It eventually created Korea as a country with the most Confucian characteristics in the East Asian Confucian culture cycle.

朝鲜王朝后期的朱子学明显地呈现出三个方面的特色:一是朱子学的礼学化倾向,这一方面说明了朝鲜王朝后期的朱子学已经发展为高于世俗王权的形而上学权威而凌驾和覆盖了全社会,另一方面也证明了朱子学开始走向僵化而很难再发挥推动社会进步的思想作用;二是从17世纪下半叶开始以“脱性理学”和以百科全书式的博学态度探索对社会制度的全方位改革的实学思潮悄然兴起,这一实学思想不断结构传统体系,颠覆中心意义,开拓边缘空间而具有近代指向性;三是朱子学与“两班”相结合而转化为一种生活文化,致使朱子学和两班社会成为稳定地支撑封建王朝体制的两大支柱,也最终将韩国打造为东亚儒家文化圈中最具儒教特征的国家。

목차

[한글 요약]
Ⅰ. 朝鲜王朝后期朱子学的礼学化倾向
Ⅱ. 朝鲜王朝后期“脱性理学”的实学
Ⅲ. 朝鲜王朝后期朱子学与“两班”文化的融合
参考文献
【内容摘要】
[Abstract]

참고문헌 (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