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인간은 언어 없이는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초기유식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의 식과 언어는 동본원적 지위를 갖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를 인과로 삼음으로써 비로소 공히 생명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유식무경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가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그 자체 실체로서 인식대상을 담지하는 것은 아니다. 무로서 식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언어가 이를 현상하는 집이자 형식이기 때문이라면, 그리고 언어 또한 이 식을 인과로 삼음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어가 실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와 언어에 의해 드러난 세계는 상호 연관성이 없는 객(客)이라고 해야 한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할 수 있지만, 언어에 의한 분별로 현상된 세계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유식학은 ‘견이 있는 의언분별’이라고 설명한다. 지혜란 깨달음의 다른 말이라고 볼 때, 이러한 언어와 존재자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은 나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