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인승마」 은유의 탄생과 수용, 변형과 끝의 어떤 궤적을 서술한다. 이 은유는 주희에서 시작하여 이황과 이이를 거쳐 다양한 해석학적 변형을 야기하면서 한국 성리학 의 철학적 사유를 추동하는 뿌리은유였다. 개념적 은유는 인간의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추상적 사유를 서술하는 사유 양식이다. 개념적 은유의 확장성은 「인승마」 은유의 변형을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이 은유에 대한 주희의 해석만으로는 확장과 변형을 모두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은 『주역』 「계사전」에서 그 단초를 찾았다. 주희의 「인승마」 은유를 수 용한 이황은 「운동(힘)」 도식을 재해석하여 리의 ‘자기 원인적인 힘’을 담지한 ‘이발 (理發)’을 제시한다. 이이는 이황의 도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계사전」의 「포함」 도식에 기인한 「그릇 속의 물[器中水]」 은유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운동(힘)」 도식에 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힘의 문제는 여전히 은폐된 채 잔존했다. 이런 공약 불가능성은 이 기 논쟁의 큰 두 축인 ‘주리 계열체’와 ‘기발이승 계열체’로의 분화를 야기했다. 18 세기 이익(李瀷)의 「인승주(人乘舟)」 은유를 마지막으로 이 은유에 대한 논쟁은 잠잠해졌 다. 이 은유는 19세기 후반 기정진의 「외필(猥筆)」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율곡학파에서 퇴계학파의 성리학을 일원화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외필논쟁(猥筆論諍)’을 야기했다. 전우는 「외필변(猥筆辨)」과 「삼가태극설변(三家太極說辨)」에서 그의 은유를 비판했다. 이 논쟁은 ‘주리 계열체’의 연속으로 리가 사물화(死物化)되는 것을 우려한 진영과 ‘기발 이승 계열체’의 연속으로 리의 지나친 활물화(活物化)를 우려하는 진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승마」 은유의 종말은 리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철학적 사유의 등장과 함께했다. 기의 자존성(自存性)만을 주장한 설태희(薛泰熙)에 의해 그 종말이 선언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