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유비 이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에크하르트가 도미니코회 소속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개한 유비 이론은 그의 선대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 이론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에 근거하여, 현대의 많은 연구자들이 에크하르트의 유비이론을 비판했다. 그들은 에크하르트의 유비 이론이 토마스의 유비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에크하르트가 전개한 유비 이론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입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에크하르트는 토마스의 유비 이론을 의도적으로 변형, 사용함으로써, 그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에크하르트와 토마스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이유는, 유비 이론에서 선차적 유비항과 후차적 유비항이 맺는 관계를 각각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일차적인 유비항뿐만 아니라 이차적인 유비항도 그만의 존재와 형상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크하르트의 관점에서, 일차적 유비항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소유한 반면, 이차적 유비항들은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소유할 수 없다. 따라서 이차적 유비항들은 존재를 갖기 위해 일차적 유비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즉, 이차적 유비항으로서 창조된 사물들은 일차적 유비항인 신에게 존재를 외부적으로 빌려온다. 이는 신 존재의 절대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피조물의 존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격하시킨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철학적 기획은 단순히 두 유비항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에크하르트는 신을 일자, 혹은 지성으로 제시함으로써, 유비 이론에서 드러난 대립이 일자의 ‘비구분성’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일자 안의 어떠한 ‘구분성’도 배제함을 보인다. 에크하르트는 존재(신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구분성의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자와 창조된 존재 간의 구분이 심해질수록, 일자의 비구분성은 더욱더 강화된다. 더욱이 일자의 비구분성은 신의 존재를 통해서 야기된 구분성까지도 배제한다. 즉 자신 안에 자신이 낳는 ‘구분성’까지도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비구분성’ 속에서, 일자는 이제 자신을 매개로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것만을 낳게 된다. 이를 우리는 ‘일의적 원인론’이라 부른다. 이러한 존재론적 대립과 구분성을 허용함으로써 일자는 자신의 단일성과 자기-매개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의적 원인론과 유비적 원인론이 갖는 상관관계가 고찰될 때에만, 우리는 에크하르트의 유비 이론이 그의 철학 체계 내에서 지니는 독창적인 가치와 역할을 알 수 있게 된다.